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계정 찾기 다시 시도
( 오늘 방문자 수: 193,  총 방문자 수: 140,347 )
토론토에서 일어나는 각종소식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B
torontoevent
토론토 뉴스&이벤트 ( 전체 게시글 수: 580 )
torontoevent
8564
감동을 주는 말 한마디가?아하아이디어 2019-12-16
첨부 파일:  

■ 감동을 주는 말 한마디가?


로저 롤스는 제35대 뉴욕주 주지사이자 뉴욕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였다.

그는 뉴욕의 한 빈민촌에서 태어 났다.

 

그곳은 술주정꾼들이 많고, 마약꾼들과 강도, 그리고 불법 이민자들이 들끓는 그런 곳 이었다. 

이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학교도 무단결석을 하고, 싸움질과 절도, 심지어는 마약 복용까지 서슴지 않는 생활에 물든 채 성장하기 때문에 대다수가 어른이 된 이후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거의 갖지 못했다.

 

로저 롤스도 어렸을 때 뉴욕 부루클린에 있는 로비타 초등학교의 흑인 학생이자 문제 학생이었다. 

어려서 부터 아이들과 싸움질만 하고 무단결석도 잘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골머리 앓고 있는 학생이었고, 그의 친구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61년 새 학기가 시작된 날, 이학교에 '피어 폴'이란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왔다. 

폴 선생님은 이 학교 오기 전부터 학생들의 악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폴 선생님은 이러한 학생들을 그대로 놔두고 보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충고와 설득이 아무런 효과가 없자, 폴 선생님은 빈민가 아이들이 미신에 무척 집착하고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폴 선생님은 어느 때와 마찬 가지로 책을 들고 교실에 들어가서 "오늘은 수업을 하지않고 너희들의 손금을 봐주겠다" 라면서 아이들에게 두 손을 내밀고 조용히 앉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명씩 손금을 봐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금을 봐 달라고 재촉 했다. 

그런데 폴 선생님에게 손금을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폴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커서 백만장자가 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를 것 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한 흑인 소년의 차례가 되었다. 

그 아이는 어려서 부터 누구도 자기에게 좋은 말을 해 준 사람이 없던터라, 속으로 선생님의 불길한 말이 나오면 어쩌나 불안했다. 

폴 선생님은 불안해 하는 아이를 달래며, "너도 손금을 봐 줄게, 난 손금을 아주 정확하게 본단다.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라고 말했다. 

 

아이는 긴장된 표정으로 손톱에 때가 잔뜩 낀 손을 내밀었다. 

폴 선생님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진지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정말 굉장하구나. 넌 커서 뉴욕의 주지사가 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폴 선생님이 보는 손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가슴이 찡 하면서 그말이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았으며 그날이후 더 이상 할렘가의 쓰레기 더미속에서 딩굴지 않았고,  걸을때도 당당하게 걸으며 40년동안 뉴욕주지사가 되기위해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다른 아이들도 손금을 본 후로는 싸우거나 무단으로 결석하는 일이 없이 공부를 열심히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등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후일, 손금을 봐 주었던 아이들 중 대부분이 정말로 부자가 되거나 운동선수로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금을 본 아이도 역시 51세에 뉴욕주의 주지사이자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로저 롤스다. 
 
로저 롤스가 뉴욕주지사에 당선된 후 취임식 날 300여명의 기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물었다. 

“주지사가 된 비결이 무엇 입니까?” 

 

“피어 폴 선생님 때문입니다.” 주지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피어 폴 선생님이 누굽니까?” 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피어 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꿈을 갖는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설사 거짖말에서 비롯된 꿈 일지라도 스스로 확신을 갖고 끝까지 견지한다면 그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어른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출처 : 유익한 카톡방..정창헌님의 게시글 펌

148706
torontoevent
아하아이디어 2019-12-16

정창헌님이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려고 올려주신 글
그렇습니다. 정말 감동되고 힘이 되는 말입니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내려는 글들이 난무하는 중에 모처럼 '아주 도움되는' 내용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고등학교에서도 미술교사로 재직했었기에 가슴으로, 동감, 공감하였습니다.

148707
torontoevent
아하아이디어 2019-12-16

한호림님 의 글 또한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한 말씀은 한 어린이에 장래를 좌지우지 할수 있습니다. 


하여 좋은 스승 아래에서 좋은, 성공하는 제자가 나오는 법 입니다.


하여 한호림님 선생님이 키워낸 훌륭한 제자들이 성공함에 한선생님이 이렇게 오늘날 마음이 뿌듯하신 것 입니다.


큰 박수를 보내며 우리 동포사회에도 큰 지도 편달을 부탁 드립니다.ㅎㅎ

148708
torontoevent
아하아이디어 2019-12-16

아이구우~
황감합니다. 쑥스럽습니다. 동포 사회에 지도 편달이라니요.


그런데... 기왕 나온 이야기, 더 쑥스럽지만 좋은 이야기니까 조금 더 할까 합니다.

 

(제가 재직했던 대학의 졸업생들이 들으면 섭하겠지만)


지금까지도 덕수상업고등학교 교사 시절의 제자들과는 연(緣)이 아주 깊고 끈끈합니다. 우리 부부가 한국에 갈 때마다 (결코 떠벌려 알리고 간 일이 아닌데) 한국에 있는 동안 그 옛날 제자들이 서로 서로 연락하여 내내 우리 부부를 들볶습(?)니다. 그래서 형제들보다 제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옵니다. 이제 그들도 나이가 59세에서 60세에 이릅니다. 사회적으로 윗사람들이지요.


그 어렵던 시절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서 어찌 어찌 야간대학을 마치고 노력, 승진하여 지점장까지 마치고 은퇴한 제자들이며 대기업에서 간부로 은퇴하고, 크고 작은 자영 회사의 현직 사장들도 정말 수두룩합니다. 그들은 때로 아내까지 데리고 나와 인사시키도 하지요. 어라? 손자 손녀까지 둔 제자들이 있더군요. 


집이 가난하여 대학을 아예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를 다녀 취직을 하여 집안을 일으키려고 했던 그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마다 술자리에서 저하고의 (건망증이 아니라 저도 잘 기억 못하는) 사연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해주셔서..." 그럴 때마다 쑥스럽기 그지 없지요. 그들이 말이 제자이지 지금 이 사회의 어른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도 당시 무슨 뭐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나도 젊은 교사로, 또한 덕수상고 선배로서 객기가 반(半)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참 그럴 때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148709
torontoevent
아하아이디어 2019-12-16

안녕하세요.


김내홍입니다.
416-731-0752


"인물탐방"


저는 어제 한호림님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깊은 인생의 경륜이 느껴졌습니다.
저보다는 14~15년은 연배 되셔 보였습니다.
일제 식민지의 참담하였던 세월은 기억에 남지 않으시겠지만,
처참하였던 민족상쟁의 6.25 한국전은 뚜렷하게 경험 하셨을것 같습니다.


험난하였던 한국역사질곡의 세월을 보내시면서 굳굳하게 자신을 지키고 가꾸어 오신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올려주신 글에서도 느꼈습니다만,
참으로 귀한분을 만나면서 취재하는 마음으로 길지않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재치와 재능이 뛰어나십니다.
"결코 자랑하려함이 아닙니다"
"황감합니다"
"쑥스럽습니다"
하시면서도 본인의 이력과 경력을 알려주십니다.
참으로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 오셨으리라 미루어 생각합니다.


그리하지 않으셨으면 어찌 덕수상고를 나오시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며 후학을 지도하시고 그걸로 끝이아니고 대학에서도 강의 하셨겠습니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살아가는데 한호림님의 정신이 우리에게 본이 되길 원합니다.
어제 올리신 글을 읽으면서, 


"후생가외"말씀처럼 


한호림님은 뛰어난 제자를 발견하시고 그의 앞날에 큰발전을 인도 하신부분은,


옛것을 그리도 숭상하던 "공자"가 예외적으로 그의뛰어난 제자 "안회"의 미래지향적인 사상을 수용하셨음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해군 수병때에 거북선을 탐구하셨던 놀라운 정열과 향학정신에 감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호림님의 싸울수있는 거북선이더욱 발전하여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놀라운 군사력에 대처해야됨의 교훈을 얻습니다.


"선조"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앞서서 "율곡 이이"선생의 10만 양병설의 부활이 되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호림님께서는,
유익한 카톡방, 뉴서울,캐투버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48710
torontoevent
아하아이디어 2019-12-16

한호림님의 프로필을
올립니다.

 

덕수상고-홍대미대 출신입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흥인초등학교, 덕수중학교,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1987년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1993년에 국내 최고의 슈퍼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힌 기발한 영어 어휘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시작으로, 1994년에는 청소년을 위한 『Junior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1996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Children'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1, 2, 3』을 펴내면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난 반드시 미술가가 된다!" 이것이 어려서부터의 확고한 꿈이었습니다. 미술학도 시절, 멋모르고 데생하던 비너스, 아폴로 같은 석고상에서 그리스 신들의 생김새와 익숙해졌다. 그걸 계기로 대학교 재학 중 입대한 해군에선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 딱 두 권만 파게 되었답니다. 모교 미술 교사를 거쳐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된 후,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일반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으로만 보던 숱한 그리스·로마 신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1987년, 정말 온다간다 소리 없이 캐나다로 오셔서 한국 시각디자인계에서 사라집니다. 그때부터 실업자 상태로 온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니시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영어와 신화 자료들을 마구 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시기를 5년, 


디자이너가 도대체 언감생심 서양의 실제 생활에서 깨달은 영어 지식을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열망에 빠집니다. 그 법열 속에 쓰고 직접 그린 전대미문의 기발한 영어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들고 나와 일약 슈퍼베스트셀러에, 밀리언셀러가 되셨습니다. 그 다음엔 희한하게도 영어와는 정반대 쪽 언어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를 출간, 역시 그 분야의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이루십니다. 특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일본 어학출판계의 거봉인 삼수사(三修社)와 중국-홍콩의 최대 출판사 삼련(三聯), 대만의 신성(晨星)출판사에 의해 각각 일본어판과 중국어판으로 출간되면서 그야말로 아시아를 확실하게 평정하셨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리즈는 그야말로 계속 꼬리를 물어, 21년에 걸쳐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완성한 디자이너를 위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 1, 2』, 『서양문화 인사이트』가 출간됐고, 이어서 신앙서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은혜』도 나왔습니다. 이 첨단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과 대화로 통용되고 활용되는 신화, 펄떡펄떡 뛰는 활어같이 새파랗게 살아 움직이는 신화를 낚기 위해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그리하시길 도합 28년, 구슬이 서 말이 되어 이제는 꿰어서 보배를 만들 때가 되었기에 숱한 밤을 새우며 쓰고, 그리고,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최근에 나온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두 권으로, 이는 신화 채집 30년 세월의 발품과 땀의 결실이되었습니다.

148711